저는 확신에 찬 보편구원론자입니다. –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

출처: Tentmaker


윌리엄 바클레이는 많은 교회에서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고 현대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성경에 대한 그의 명석한 주석이 종종 깨달음과 깊은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글래스고 대학교의 신학 및 성경 비평학 교수였던 바클레이는 “일반 독자들이 최고 수준의 성경 연구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 바클레이가 직접 번역한 신약성경을 한 구절 한 구절 살펴보고, 바클레이가 알고 있는 모든 가능한 해석을 나열 및 검토하고, 그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모든 배경 정보를 제공하는 신약성경 주석집인 데일리 스터디 바이블(the Daily Study Bible)이 탄생했습니다. 17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모두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이 교수는 평생을 학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게으르게 말하거나 쓰는 성직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부한 자료, 빌리거나 훔친 자료, 또는 케케묵은 자료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명히 지식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헬레니즘 그리스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투키디데스, 헤로도토스에 대해 완전히 친숙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단어에 대해 논의할 때 그는 그 단어의 고전적 기원에서부터 칠십인역 시대의 환경까지 추적했습니다. 그는 코이네(보통의, 평범한, 보편적인) 헬라어(1세기 그리스어) 단어에 익숙했습니다. 그는 신약성경의 용어 사용 방식을 탐구하고, 초기 “교회 교부”들이 다양한 성경 본문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보여줌으로써 연구를 보완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언어적 연구는 연구 방법론의 모범입니다. 바클레이의 작은 책인 신약성경의 단어들(New Testament Words)은 특히 목사들에게 꼭 필요한 책입니다.

바클레이는 그 외에도 많은 대중적인 책을 썼는데, 대부분 접근하기 쉬우면서도 학술적인 스타일로 썼습니다. 그는 『예수의 마음』(1960)에서 “예수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살려서 우리가 그분을 더 잘 알고 더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학생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열정만 불러일으키는 교사는 위험한 교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가르침은 학생을 심리적 안전지대로 이끌고 궁극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암적인 무기력증을 키우는 데 일조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좋은 교사는 청중에게 알고, 느끼고, 실천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텐트메이커는 바클레이의 가르침 중 일부(예를 들어 신약성경의 기적을 경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가 저명한 학자로서 자신의 보편구원론을 세상에 알리는 데 부끄러움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음은 그의 『영적 자서전』(William Barclay: A Spiritual Autobiography)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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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확신에 찬 보편구원론자입니다.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 1907-1978)

저는 확신에 찬 보편구원론자입니다. 저는 결국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모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회 역사의] 초창기에는 오리겐이 보편구원론과 관련된 위대한 이름이었습니다. 저는 오리겐과 마찬가지로 보편구원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오리겐은 죽음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면전에 합당하게 되기까지 오랜 기간의 교육과 가장 엄격한 훈육, 심지어 가장 가혹한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오리겐은 지옥을 없애지 않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지옥을 거쳐 천국에 가야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때에도 상처가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영원한 형벌을 믿지는 않았지만, 영원한 형벌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에 따르면] 선택은 우리가 하느님의 제안과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오랜 세월의 정화를 거치는 길고 끔찍한 길을 택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니사의 그레고리는 자신이 보편구원론을 믿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그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그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타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지혜로우시기에 그를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르지 않으신다.” 둘째, 그는 악의 본질 때문에 그것을 믿었습니다. 악은 결국 없어져야 하며, “그렇게 해서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예 존재하기를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은 본질적으로 부정적이며 존재하지 않게 될 운명입니다. 셋째, 그는 형벌의 목적 때문에 그것을 믿었습니다. 형벌의 목적은 항상 교정적입니다. 그 목적은 “선한 것을 악에서 분리하여 행복한 친교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형벌은 고통스럽지만, 합금에서 금을 분리하는 불과 같고, 병든 부분을 제거하는 수술과 같으며, 다른 방법으로는 제거할 수 없는 감염된 조직을 태워버리는 소작과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사람들의 논증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보편적 구원에 대해 저를 설득했던 생각들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첫째, 신약성경에는 이러한 믿음을 정당화하는 것 이상의 근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한복음 12:32)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2)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이렇게 씁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실 최후의 완전한 승리를 바라봅니다(고전 15:28). 디모데에게 보낸 첫 번째 서신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주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읽습니다(딤전 2:4-6). 신약성경 자체가 ‘모든’이라는 단어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둘째, 핵심 구절 중 하나는 마태복음 25장 46절로, 이 구절에서 버림받은 자는 영원한 형벌로, 의로운 자는 영생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형벌을 뜻하는 그리스어는 콜라시스(kolasis)로, 원래는 윤리적인 단어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 나무를 더 잘 자라게 하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모든 그리스 세속 문학에서 콜라시스(kolasis)는 교정적 형벌 외의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영원(eternal)을 뜻하는 단어는 ‘아이오니오스'(aionios)입니다. 이 단어를 발명했을지도 모르는 플라톤은 어떤 것이 영원(everasting)할지라도 아이오니오스(aionios)는 아닐 수도 있다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에 이 단어는 영원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플라톤이 보기에 아이오니오스(aionios)는 하나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사용될 수 없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해당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형벌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합당하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교정적인 형벌입니다.

셋째, 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 세상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유효하고 여전히 작동하며 여전히 역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이 이 세상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주만큼 넓다고 믿습니다.

넷째, 저는 하나님의 궁극적이고 완전한 승리, 만물이 그분께 복종하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그 날을 암묵적으로 믿습니다(고전 15:24~28). 저에게 이것은 특정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만약 마지막 날에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 밖에 남아있다면, 그것은 그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겼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승리를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하나님이 왕이나 재판관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의 원수들이 지옥에서 고통스러워하거나 전적으로 완전히 전멸되어 없어진 것이 그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왕이시자 재판관이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이시며, 다른 무엇이기보다도 참으로 아버지이십니다. 가족 구성원이 영원히 고통받는 동안 행복할 수 있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어떤 아버지도 불순종하는 가족 구성원을 없애는 것을 승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승리는 모든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랑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승리는 사랑의 손길에 사랑의 응답이 돌아오는 그 날입니다. 가능한 유일한 최종 승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주입니다.

[William Barclay: A Spiritual Autobiography, pg 65-67,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Grand Rapids, 1977.에서 인용]

287 thoughts on “저는 확신에 찬 보편구원론자입니다. –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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