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구원론자가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Keith DeRose의 대답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의 댓글에서 흥미로운 논의가 이어지지만 여기에 포함시키지는 못했습니다. (2023/11/29 댓글 번역 추가했습니다.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GOTT-May 27, 2006
“보편구원론의 문제점”? (The Problem with Universalism”?)
Keith DeRose
2006년 5월 27일
번역: christianuniversalism.kr
약 7년 동안 저는 보편구원론을 옹호하는 글인 “보편구원론과 성경”(Universalism and the Bible, 번역본 링크)을 온라인에 게시해두었습니다. 수년 동안 저는 그것에 대해 많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갑자기 새로운 종류의 코멘트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질문 경찰”(Question Police)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저에게 이유를 묻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제가 틀렸다고 말하거나 제 추론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아닌, 제가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글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걱정의 출처를 찾아서 빨리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브라이언 맥클라렌(Brian McLaren)의 『마지막 말씀과 그 이후의 말씀』(The Last Word and the Word After That)에 나오는 이 구절이 바로 그 출처인 것 같습니다.
“보편구원론의 문제점은 그것이 제공하는 대답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 대답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그것은 그와 대립하는 다른 대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보편구원론이 답하고자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복음의 목적이 개개인의 영혼이 죽은 후 천국에 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제합니다. 대답이 아무리 좋더라도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다면 그 대답은 충분히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질문은 … ?” 저는 반문했습니다.
“단지 개개인의 영혼이 어떻게 구원받을 것인가가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구원받을 것인가입니다. 제가 말하는 ‘구원’은 단순히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고 단순히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구원도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는 좋은 것이고, 구원하는 것이니까요. 아니, 다니엘, 복음은 어떻게 세상이 인간의 죄와 그에 수반되는 모든 것(인간의 탐욕, 인간의 정욕, 인간의 교만, 인간의 억압, 인간의 위선과 부정직, 인간의 폭력과 인종 차별, 인간의 맹목적 애국주의(chauvinism), 불의 등등)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인류는 어떻게 인류로부터 구원받을 것인가? 이 땅은 인간 개개인과 인간 집단 안에서 솟아나는 악으로부터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69-70쪽)
특별히 저는 맥클라렌을 대변하는 인물(닐)이 보편구원론자가 대답하고자 하는 질문이 “복음의 목적이 개개인의 영혼이 죽은 후 천국에 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답변하고 싶습니다.
한 명의 보편구원론자로서(다른 많은 보편구원론자들도 거의 같은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런 전제는 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저의 보편구원론이 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인간은 적어도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인가?’ 그리고 저는 이 질문은 물어볼 가치가 있다고 전제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저는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복음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전제하지 않으며, 심지어 복음의 주된 목적이라거나, 심지어 주된 목적 중 하나라고 전제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저는 개개인의 영혼이 죽은 후 천국에 가게 하는 것이 닐이 언급한 다른 목표들을 배제하는 복음의 목적이라고 가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닐이 왜 제가 보편구원론자의 질문에서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전제한다고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위 인용문의 마지막 단락에 있는 질문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러한 관심사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주요 초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왜 개개인의 궁극적인 운명에 대해 묻는 것일까요? 왜 우리 모두가 구원 받을 것인지 묻는 것일까요?
사랑하는 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염려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적절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자연스러운 염려가 모든 동료 인간에게까지 확장되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염려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딤전 2:4)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염려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염원이 충족될지 여부를 알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적절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발견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로부터 그들의 다른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보편구원론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기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보편구원론이 오히려 안일함을 유발한다고, 또는 유발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온라인 논문의 부록에서 이 우려에 대해 약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보편구원론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최선이라고 결정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정확히 그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보편구원론자의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신약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 제가 옳다면, 그 질문은 확실히 물어볼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 질문에 답할 가치가 있다고 결정하신 것이니까요!
Keith De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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